바람이 시냇물 위를 스치며 흐르는 소리 사이로 나뭇잎이 부비는 소리가 참 시원하다.
시냇물에 부셔지는 달빛과 별빛이 내는 소리인지도 모르겠다. 그냥 그런 기분이다.
길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파란 달빛에 참 쓸쓸해 보인다. 손바닥을 맞대고 개 모양 그림자를 만든다.
새끼 손가락을 움직이니 그림자 개가 짖는다. 그림자 개 옆으로 드리운 내 그림자는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.
그림자 개가 물러갔다. 내 그림자는 다시 혼자다.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. 내 그림자는 어디를 보고 있을까?
하늘에는 짙푸른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이 깜빡인다.
......
뭐가 짙푸른 바다냐. 그냥 밤하늘이다. 해가 보내는 빛을 달이 반사하여 지구로 보내고 그 빛이 대기 속의 여러 입자에 의해 산란하여 푸른 빛을 띄는 하늘이 있다. 달빛이 공기분자에 의해 일으켜진 레일리 산란이다. 하지만 낮 보단 빛의 세기가 약해 푸른 하늘이 더 어두울 뿐이다.
그것을 배경으로 별이 반짝인다. 아름답다. 좀 더 문학공부를 했더라면 근사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?
"푸른 하늘 은하수~"
주위를 둘러본다. 아무도 없다. 시냇물 소리만 조용히 흘러간다. 혼자임을 확인하고 다시 소리내어 노래 해본다. 근데 정말 아무도 없지?
"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, 계수나무 한-그루"
달에는 토끼도 두꺼비도 살고 있겠지? 안녕? 바보같다. 손을 흔들고 있다니. 그림자도 따라서 손을 흔든다. 그림자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인다. 그냥 그런 느낌이다.
언제적인지 나는 항상 달을 원했었다. 도시의 밤하늘에 떠 가던 달이 되고 싶었다.
화려한 도시 위를 떠가며 고고하게 움직이는,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으며 자신의 궤도를 지나는, 천상에서 지상을 관조하는, 너무나 매혹적인 저 달을 가진다면, 저 달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.
하지만 어느 날 알게 되었다.
달은 가질 수도, 될 수도, 다가가기조차 힘들다는 것을 말이다. 나는 그런 달 아래에서 처음엔 부끄러웠다. 그렇게 나는 달을 볼 수 없게 되었었다. 싸늘한 밤, 닿을 수 없는 곳에서 희미한 내 그림자를 만들어서 내게 있어서 발끝만 보게 해버린 달이다. 그리고 그런 달에 화가 났다. 화가 나고 부끄러워서 달을 보지 못하고 그저 발 밑의 그림자만 쫓았다. 그 시절은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에 화를 내는, 참 이기적인 날들 이었다.
달을 바라보지 않게 된 뒤로 그림자는 날마다 아니, 매 시, 분, 초 마다 변했다. 도시의 거리를 걷고 있으면 빙글빙글 도는 그림자만을 쳐다보며 걸어야했다. 거리의 가로등과 간판 조명에 때로 격하게 길어지기도, 짧아지기도 하는 그림자. 여러 개로 짙고 엷게 나뉘던 그림자.
난 나의 그림자의 형태를 잊고 있었다. 매 초 마다 변하는 그림자가 내 그림자이거니 하면서 그렇게 맞추어 지내왔다. 그러다가 지쳐버린거다. 들쑥날쑥거리는 그림자에 지쳐서 어지러워, 도대체가 뭐가 뭔지 모르게 되어버렸다. 그림자는 형태를 잃었다. 자신이 없어졌다. 내 발 밑에 만들어진 것들이 나를 집어 삼켜버렸다. 도시의 가로등 아래 서있는 나 자신이 무섭고 역겨워졌다.
도망쳤다.
그저 강제로 나를 비추던 형형색색의 전깃불이 없는 곳이면 어디든 좋다라고 생각하며 도망쳤다.
그리고 지금 시내가 흐르는 둑 위에서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본다. 달은 여전히 예쁘다. 아름답다. 별이 흐르고 그 위로 달이 흘러간다.
시냇물이 흐르고 그 안으로 쪽배가 떠 간다. 잊고 있었어. 내가 저런 달을 갈구했었다는 것을. 달은 매혹적인 존재라는 것을. 들이미는 욕심 가득한 전깃불에 가려 볼 수 없던 달을 잊고 있었다. 다시 그림자를 내려다본다.
그림자는 한층 길게, 분명한 모습으로 길 위에 드리워지고 있다. 분명 다가가기엔 멀지도 모르겠다. 아니 너무 먼 것은 사실이다.
하지만 그런 달을 쫓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. 저 달을 쫓을 때의 그림자는 정말 나의 그림자이니까.
- 몇 년 전.
